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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 지혜롭고 강한 여자, 자청비
[자청비](1) 지혜롭고 강한 여자, 자청비
  • 김순신
  • 승인 2021.01.07 2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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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애월문학회장)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영주일보가 자청비코너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예리하고 독창적인 여류작가들의 오감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세상의 모습. 일상의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작가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옭아내어지고 있는지를 음미하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촉촉한 단비가 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김순신 수필가(애월문학회장)
▲ 김순신 수필가(애월문학회장) ⓒ영주일보

어린 시절 커다란 팽나무가 있던 당 밭이 있었다. 정초가 되면 어머니는 구덕에 재물을 준비하여 당 밭으로 가셨다. 커다란 팽나무 가지에 오색 천들이 팔랑거렸다. 재물을 돌 위에 차려놓고 절을 하였다. 가정에 복을 내려 주시고 농사일도 잘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후 동네 큰 굿을 구경한 적이 있다. 심방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둘러앉은 친지들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심방의 말이 맞는다는 뜻인지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큰 굿을 할 때 농사와 가축의 풍년과 번성을 위한 본풀이가 세경 본풀이이다. 제주에서는 세경 본풀이 하면 자청비 이야기이다.

자청비의 설화를 다시 읽는다.

자청비의 탄생은 김진국과 조진국 부부가 불공을 드려 어렵게 얻은 자식이다. 자청비가 빨래를 하러 나갔다가 천상국에서 온 문 도령을 만나게 되고, 자청비는 남장을 하여 문 도령과 함께 3년을 공부한다. 얼마나 진취적인 여성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자가 공부한다고 하면 집에서도 반대했던 시대에 감히 남장하면서까지 공부를 하고자 했다. 문 도령이 자청 비를 여자라고 의심할 때마다 지혜를 짜내어 남자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포기하지 않고 지혜롭게 이겨나가는 자청비, 멋진 여성이다. 3년이 지나 문 도령이 하늘로 가게 되자 자청비는 비로소 여자임을 알리고 서로 결혼을 약속한 후 문 도령은 하늘로 간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간 문 도령은 부모님이 마련해 준 다른 혼처가 있었다.

지상에서 문 도령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청비는 가슴이 탔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한시가 여삼추 같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청비의 머슴 정수남이는 자청비를 좋아하지만 직접 말을 못 한다. 주인 딸과 머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정수남이는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청비가 미웠을 것이다. 정수남이는 자청비를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의 여자로 만들고자 기회를 노렸다. 문 도령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며 그녀를 데리고 멀리 떠난다. 자청비는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어 편안히 무릎에서 잠들게 하고 나서 그를 죽여버린다. 이 사실을 안 부모는 딸은 결혼하면 남의 식구가 되지만 일꾼은 없으면 안 된다며, 자청비를 집에서 쫓아낸다. 딸이 이처럼 업신여김을 당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자청비는 서천 꽃밭으로 가서 부엉이를 잡아주는 공을 세운 대가로 생명 꽃을 얻어와 죽은 정수남이를 살려낸다. 그러나 부모는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딸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내쫓는다.

서천 꽃밭은 어디쯤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위한 온갖 꽃을 피우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슬프게 떠난 죽음을 서천 꽃밭은 알고 있을까.

집을 나온 자청비는 청태국할망의 수양딸이 되었는데, 하늘나라 문 도령에게 갈 비단을 짜는 것을 알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함께 짜 넣어서 문 도령이 보게 한다. 이것을 본 문 도령이 자청비를 만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자청비의 처절함이 하늘까지 전해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문 도령의 부모를 만나 결혼을 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고 드디어 문 도령과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큰 란이 일어나자 자청비가 앞장서서 서천 꽃밭에서 가져온 살생 꽃으로 악당들을 물리친다.

자청비는 이 공을 인정받아 하늘 옥황으로부터 ‘오곡종자’와 ‘열두시만국’을 얻어 음력 칠월 열나흗날 문 도령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로 인해 자청비는 오곡의 여신이 된다. 그러나 그녀가 지상으로 와보니 메밀 씨를 잊고 와서 하늘로 가서 다시 가져왔기에 메밀은 수확 시기가 조금 늦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지상에 와서 보니 부모님은 죽었고, 정수남은 굶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자청비는 정수남을 위해 먹을 것을 준 가난한 사람의 밭에는 풍년이 들게 해 주고, 먹을 것을 주지 않은 부자의 밭에는 흉년이 들게 한다. 문 도령은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하세경이 되었다고 한다. 공로로 보면 자청비가 상세경이 되어야 맞는 일 같지만, 문 도령은 하늘의 배경을 가졌기에 상세경이 된 것이다. 정수남이는 자청비의 배경으로 하세경이 된 것이라고할 수 있다. 어떻든지 자청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서 결국 지상의 농경신이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자청비 신화를 보면 여성인 자청비가 얼마나 강한 여성인지 알 수 있다. 문 도령을 만났을 때 글공부를 하기 위해서 남장을 하고 문 도령과 동문수학을 하는 그것부터가 진취적인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을 해치려는 정수남이를 지혜로 막아내는 장면도 통쾌하다. 성폭력은 신화 속에서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정당방위로 정수남이를 죽였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는 내용도 성폭력에 대한 가해자 두둔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자청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더라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낸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자청비의 설화를 읽으면서 제주 여성의 강인함은 어쩌면 자청비에서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주여성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중 하나는 자청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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