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4-21 10:23 (수)
[자청비](8) 겨울 여행
[자청비](8) 겨울 여행
  • 이을순
  • 승인 2021.02.25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영주일보

지금 우리 사회는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지나친 양극화로 인해 급속도로 빈곤으로 빠져드는 중산층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더구나 젊은이들의 취업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이고, 물가는 가파르게 올랐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집 없는 서민들은 무리한 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거리로 내몰려 죽을 지경에 처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로 인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누적된 적자가 기하급수적이라고 한다. 이들 중에는 마침내 경영난으로 폐업을 하거나 아니면 폐업 지경에 이르렀다. 그 여파로 궁핍한 삶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비관론에 빠진 일부 가장들이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된다. 세상에는 코로나19로 경기침체의 늪에 빠진 서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산처럼 쌓여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정말이지 주위는 온통 암울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예전 같으면 겨울 농사일을 끝내고 이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때면, 거실 소파에 앉아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원두커피 한잔을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을 터였다. 이번 겨울 여행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로 떠나볼까?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아서….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으면 금세 쿠바산 시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듯했고, 한쪽 구석 자리에 앉아 아바나산 럼주를 기울이고 있을 나의 모습 또한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처럼 즐거운 상상은 진한 커피 향에 묻어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나 충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데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과 한탄의 신음이 어느새 내게로 전이가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삶의 본질적인 물음. 그 생각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다가도, 혹은 오름을 오르면서도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타인의 고통이 바로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 오름을 찾는 횟수가 더 잦아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건강해지려는 것도 있고, 진정한 내면과 대면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삶의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렇다고 그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동안 우울과 불안감이 차츰차츰 엷어지면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존재에 대한 감사였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 아무리 많은 부를 갖고 있어도, 권력과 명예를 온몸에 휘감고 있어도, 인간은 슬프게도 그 어떤 거 하나 가져가지 못한 채 홀로 외롭게 죽는다. 그러하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하나뿐인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북망산천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자연은 이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득 며칠 전 만났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재수 없으면 어쩜 백 살까지 살게 될지도 몰라. 끔찍하지 않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화창한 봄날 같은 날씨였다. 우리는 함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흰구름은 스스로 길을 만들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백 살까지 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저기 흘러가는 구름처럼 말이야.

오랜만에 겨울 농사일을 마치고 지난 일을 회상하며 거실에 앉아 찻잔을 비워본다. 그리고 이제 더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헛된 꿈도 꾸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삶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이번 겨울 여행길 위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잠시 떠올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라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발행일 : 2011-09-22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youngjuilbo.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