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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12) 폭풍의 화가 변시지
[문상금의 시방목지](12) 폭풍의 화가 변시지
  • 문상금
  • 승인 2021.03.23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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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유화(詩中有畫) 화중유시(畫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시와 그림은 원래 한 몸이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제주의 거센 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절룩이는 사내, 말, 태양, 배, 까마귀들은 화폭에 담긴 채로 그대로 시가 된다. 절절한 서사시(敍事詩)가 되어, 뒤집어졌다, 다시 한바탕 끓어오른다. 휘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외로움도 적막도 없는 이어도에 가 닿을 때까지, 아! 얼마나 더 절룩이며 가야 하는가, 폭풍의 화가여!’
 

폭풍의 화가 변시지

문 상 금

파란 바닷물이 출렁일 때면
이어도는 어떤 곳일지
늘 궁금하였다.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폭풍이 되고
그 세찬 폭풍 속을
지팡이를 짚고
쓰러질듯 절룩이며
이어도를 건너오는 사내가 있다.

죽어서 갈 수 있다는 이어도를
온통 황토 빛인 하늘과 바다를
등 뒤에 거느리고
이어도를 건너오는
구부정한 한 사내가 있다.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강렬한 폭풍 속에 내던져진
존재의 고독을 한없이 사랑한 사내
세상의 모든 바람들이 뚫고 지나갈
바람의 통로를 화폭에 그려낸다.

세찬 폭풍, 쓰러질 것 같은 소나무, 외로운 사내, 흔들리는 쪽배, 여윈 말,
황토 빛 하늘과 바다, 양파뿌리 같은 태양 그리고 다리가 하나인 까마귀,
또 절룩이는 까마귀, 까마귀 ...

사내는 까마귀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까옥, 까옥”
까마귀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눈을 감으면
기다림과 적막 그리고 평화

온통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
이어도에서

손 흔드는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오늘은 서귀포에서
불멸의 점 하나 내리찍는다.
 

-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영주일보

우성(宇城) 변 시지 화백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스물세 살 때, 1989년도 12월 무렵, 희끗희끗 눈발 날리던 한겨울이었다. 서귀포 상설시장(현 매일올레시장), 어느 허름한 막소주 집이었다. 변 화백이 제주대학교 강의를 일찍 끝내고 서귀포 동홍동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아윤선생과 약속이 잡혀 저녁 무렵에 단골 막소주집으로 몰려가게 되었다. 변 시지 화백은 제자 양 원석 화가(동양화 전공)를 불렀고 아윤선생은 필자를 동행하였으니, 화가 대 시인인지, 시인 대 화가인지, 열띤 토론들이 서너 시간 불꽃처럼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양 원석 화가는 나와 말띠 동갑이라 허물없이 예술에 관하여 수많은 의견들을 주고받곤 했었는데 이제는 시력이 아주 나빠져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하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끝내 술은 배우지 못하였다. 그래도 소주 한 잔 받아놓고 몇 시간씩 대가(大家)들 틈에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축복 받은 자산이 되었다.

작달막한 체구에 지팡이 짚고 깔끔하고 조용하게 소주도 잘 드셨다. 검정 베레모 밑으로 조용하고 민첩하게 반짝이던 눈, 참 인상적이었다. 술자리를 파하며 변 화백님 집(당시 남양 맨션, 후에 세기 아파트로 옮겼음)으로 그림구경을 가게 되었다. 현관에서부터 오일냄새가 폴폴거리더니만,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이런 황토밭인지 유채꽃 밭인지 온통 거실이며 방벽에 대서사시 같은 대작들로 꽉 차 있는 것이었다. ‘이런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계셨던 거인이셨구나!’엄청난 반전이었다. 뭐라 뭐라 그림 설명을 해주셨지만 통 귀에는 안 들어오고 오직 그 황토 빛 속으로 회오리바람 타고 빨려 들어가 화폭 속 소나무 뒤에 숨어서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 변 화백의 제주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막소주집에서 그리고 각종 해물과 채소가 들어간 잡탕밥을 유독 좋아하셨던 덕성원에서 그런 자유로운 토론모임들이 대략 25년 정도 이어졌다.

변씨와 현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서홍동 연주현씨 집안으로 필자는 1996년도에 출가(出嫁)를 하게 되었다. 바로 신혼집 서쪽 담(집 둘레 높은 담, 우성(宇城)이란 호와 연관, 현재도 있음) 경계 너머가 변 시지 화백 생가 터라 그 인연이 더욱 소중하고 각별하였다. 그리고 생가 초가집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몇 점 있었는데, 당시 이웃집인 초가집(현재 필자 거주하는 집 전신)을 넣은 것들이 있다고, 아드님이신 변 정훈 아트시지 이사장이 새롭게 알려 주셨다. 2012년부터 숨비소리 시낭송회 정기공연이 매달 이중섭거리 예그리나 찻집에서 열렸다. 초대 문자를 보낼 때마다 매달 참석해 아윤선생과 함께 자리를 빛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 무렵 화실이며 전시장이었던 ‘변시지 예술공간’을 방문하여 변 화백의 그림을 두 점 직접 구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케이 옥션에서 또 한 점 추가로 구입을 하게 되었고 현재 세 점 모두 소중하게 잘 보관하고 있으니, 이만한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그 후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제주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서둘러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투병으로 인해 숨비소리 시낭송회 공연에 참석을 못하신 것을 미안해하시며 잘 했느냐고 오히려 걱정을 해주셔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2013년 6월 8일 끝내 지병으로 타계하셨던 것이다.

그 후 2016년 7월 29일 ‘폭풍의 화가’ 고(故) 변 시지 화백이 고향에서 주민들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서홍동 주민자치 위원회(위원장 양대년)는 변 화백의 생가 인근에 ‘변시지 그림 정원’을 조성하고 추모 조형물 ‘영원한 빛’을 세웠다. 그 날 열린 추모 조형물 제막식에서 필자는 변 화백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히며, 특별 창작시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낭송해 그 소중한 인연을 다시금 깊이 기렸다. 그 후 김 백기 예술 감독의 변 시지 퍼포먼스와 바람난장 예술 공연이 ‘변시지 추모 공원’에서 있을 때 내레이션 시낭송으로 수차례 애송되고 있어, 늘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말년에 한 손엔 지팡이를 또 한 손은 필자의 손을 꼭 잡고 세기아파트 계단을 올라, 잘 가라 오래도록 손 흔드시던 그 모습들은 따뜻한 온기로 오롯 남아, 밤을 새워 창작시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오며 가며 바로 집 앞이라 ‘변시지 그림정원’에 들러 햇볕도 쬐고 숨 고르기도 한다.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작은 캔버스에 그림 작업하시는 변 화백의 동상 옆에 앉아 있노라면 까마귀들이 몇 마리 쉬다가 간다. 까마귀는 제주에서 길조다, 그 중 한 마리, 한 개의 다리를 가졌다, 절룩이는 까마귀, 그것은 화가이며 곧 시인이다. 그림도 불멸의 명작으로 남고 그 곁에 시(詩)도 길이 남기를, 이제 절룩이며 시인은 또다시 부단히 가야 한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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