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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포토에세이](7) 전농로 벚꽃길의 밤
[양순진의 포토에세이](7) 전농로 벚꽃길의 밤
  • 양순진
  • 승인 2021.03.2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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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 시인

  벚꽃의 유혹에 길을 떠난다. 해마다 치르는 제주의 벚꽃축제는 코로나로 취소되었지만 벚꽃은 만발할 테니까.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일로 바빠도 벚꽃 터널을 지나는 황금 시간과 맞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

  가장 먼저 대낮의 전농로 벚꽃길로 들어섰다. 한적한 길, 역시 꽃도 사람이 붐벼야 아름답다. 사람은 없고 벚꽃만 휘황찬란했다. 꽃이 쓸쓸해보이긴 처음이다.

  다음으로 제주대학 벚꽃길로 향했다. 대학시절도 함께 추억할 수 있어 늘 그리운 길. 생각한대로 벚꽃이 만발하게 피었다. 경찰차가 몆 대 있고 제법 벚꽃 즐기러 온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로 차에서 내릴 순 없고 벚꽃 터널을 마치 행복 터널처럼  통과했다.

  그 다음 산천단을 돌아나와 정실길 벚꽃 터널 지나 장전리로 향했다. 벚꽃축제 장소 장전리 벚꽃까지 봐야 후련할 것 같다. 한적하지만 역시나 벚꽃은 필 시기를 잊지 않고 활짝 피어 있었다.

꽃이 필 때 꼭 보아야 봄이 가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벚꽃길 코스를 다 돌았다고 행복에 젖던 그 저녁, 다시 전농로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 지나침은 우연이었다. 우연은 때로 운명보다 더 운명적일 때가 있다.

  대낮의 전농로와 밤의 전농로는 색깔이 달랐다. 축제는 취소되었고 사람은 뜸하지만 형형색색 불꽃이 벚꽃을 비추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 귀한 풍경을 어떻게 심장에 담지 않을 수 있을까. 골목길에 차를 주차하고 벚꽃 아래 우두커니 섰다.

  사람이 그리운 벚꽃은 파랑, 빨강, 노랑, 하양, 분홍, 초록 불꽃을 일으키며 봄밤 내내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울컥 목이 메었다. 사람이 그리운 건 벚꽃만이 아니다. 꽃구경 떠난 사람의 마음엔 꽃 향기가 아닌 진정 사람의 향기가 그리운 것이라는 걸.

  올봄 벚꽃축제는 도둑고양이처럼 살짝 훔친 풍경 같아서 쓸쓸했으나 홀로 마음껏 추는 부르스처럼 가장 값진 봄의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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