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현태식 칼럼]
[현태식 칼럼](213)나의 친구들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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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2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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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믿을만하고 자기를 알아주는 지음(知音 :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셋만 얻으면 성공이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배고플 때부터 도와준 그런 친구가 대여섯 있다. 나는 몸이 건강치 못하여 술도 담배도 화투도 바둑도 장기도 노래도 춤도 모두 안하는 그 방면에 백치다. 그래서 같은 취미로 동질적 우정을 쌓는 일은 한 바 없다. 나의 벗은 이해관계를 떠나 멀리 있어도 이심전심 같이 정이 도타웁고 감싸주는 벗들이다.

▲ 내 친구 고정수 ⓒ영주일보

○ 고정수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친하게 되었다. 나는 호주머니에 돈이라고 놓아본 적이 없어 이 친구에게 빵조각 하나 변변히 사준 적이 없어도 싫은 내색을 않고 친구가 되어준다. 그냥 보는 것으로 그의 사정과 나의 사정을 서로 손바닥 보듯이 알고 도와줄 일 있으면 생색내는 일, 공치사하는 일 없이 도와주고 특별한 것이 있으면 선물로 준다.
오현고등학교 졸업한지 만 50년 학창시절까지 합해서 53년이 되지만 이 벗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이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섭섭하거나 서운한 일이 없다 할 수 없지만 낯빛을 붉히거나 불친절한 말을 하거나 아니면 무슨 일에 거절하거나 한 바가 단 한번도 없다. 이 친구의 부인과 자식들과도 모두 가깝다. 서로 음성을 높여본 적이 없으니 어찌 知音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친구도 요즈음 나이 들어 건강이 좀 안좋은데 회복하고 인생길 도반이 되어 더욱 지난날 보다 도타운 우정을 나누며 가기를 기원한다. 친구야 강남 가자. 그때 유럽 8개국 14박15일 다닐 때도 김광재 부부(부인 장열이)와 친구의 부부(부인 김동욱), 우리 부부(부인 한정자) 같이 웃음꽃 피우며 정말 다정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즐거운 여행을 하며 서구의 높은 문화를 접했었지. 자네가 만들어준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이 우리 방에 걸려있어. 볼 때마다 감사하고 있네. 친구야 행복하라.

▲ 내 친구 김광재 ⓒ영주일보

○ 김광재
이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때도 잘 몰랐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하고 일년을 쉬었다가 오현고등학교에 입학했으니 친밀감은 느끼는 동무가 극히 소수였다. 그런데 1978년 오현고 7회 졸업 동창회를 발족하고 웬일인지 그 창립총회 자리에서 우뢰같은 박수로 나를 회장으로 뽑아 그 고마움에 수락은 하였으나 동창들을 단합시키고 힘을 하나로 모아 동창회 사업을 해야 하는데 막연하였다.
그때 내가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김광재였다. 흔쾌히 응락해주어서 동창회 일을 거의 매일 같이 다니며 보았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깊어져서 나는 중앙로 살고 친구는 광양 살았는데 중앙로에 와서 같이 다니며 무엇이 우스운지 열여덟 처녀의 웃음같이 깔깔대거나 파안대소하며 중앙로 거리를 휘저어다니니 어떤 사람은 우리 보고 미쳤나? 실성했나? 매일 웃으면서 다니니 이해못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누님 누이가 여덟인가인데 외아들의 고독함을 맛볼 때가 가끔은 있다고 한다. 나를 동창회일 보며 다녀보니 생각보다 믿을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집 안방에서 밥도 먹고 바둑도 두었고 서로 스스럼이 없었다. 이 친구도 식구가 많다보니 칠성통에 살았어도 넉넉하고 풍족한 생활은 아니고 부모님이 밤낮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는 것을 보아온 터라 사회에 진출하고는 자기 직업에 철저하여 성공해야지 실패하면 안된다는 굳은 각오와 결심으로 노력하여 재산도 꽤 모았다. 또 동창회에 헌금도 자진하였기 때문에 동창간에도 신망이 두텁다.
나는 이 친구를 마음 속으로 존경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남다르다. 하나만 예를 든다면 부모님 말씀에 거슬러 대답한 적이 없노라고 한다. 내가 접해본 결과 꼭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울 때 반년 넘게 어머니와 한 이불에 자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보니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홀로 남으시니 모셔다 하루 세 끼 더운 식사를 대접하고 용돈을 드려 놀러다니는데 기죽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90이 넘어 노환으로 자리하자 병원에 매일 모셔갔다 오면서 “아버니, 아버지가 이제 나이들어 젊은 사람처럼 빨리 낫지 않을 뿐이지 제가 매일 주사놓아 드리고 약 잡수시고 하면 틀림없이 쾌차하여 이전처럼 칠성통 쪽에 가서 다방도 거뜬히 다닐 수 있습니다.”고 위로의 말을 수도 없이 하며 지내었다고 한다. 아, 아름답고 가상하다. 누구는 ‘이제 죽을 나이가 되었수다’라고 말하여 부모님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는 절대 서로 피해주지 않고 식사를 사도 한쪽만 사면 상대방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이니 돌아가며 사자 약속했다. 고정수와 더불어 부부합동으로 한달에 한번 어김없이 뷔페로 점심을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님 마음을 이 친구처럼 안정시킬 수 없고 따뜻이 모셔 효도할 수 없다. 친구지만 나는 못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이 친구를 정말 존경한다. 우리는 사생활에 대하여 제3자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지켜왔다. 우정은 더욱 아름답게 자란다. 진실한 친구다. 30년간 의가 상해본 기억이 없다. 오랫동안 인생의 동반자, 속 터놓고 지내는 친구로 소중히 하고 싶다.

▲ 내 친구 고성홍 ⓒ영주일보

○ 고성홍
이 친구는 학교 다닐 때 배 곯으면 슬며시 쫓아가 솥창 누룽지에 숟가락 담고 허기를 채울 때 밥이 적거나 많거나 싫은 기색이 없었다. 몇 번을 그랬는지 셀 수는 없지만 배고플 때 밥공양보다 고마운 것은 없다.
1950년대 후반에는 밥 못먹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로 살기 위하여 헤매다보니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았으나 학창시절은 영양분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그때 굶는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이 비극을 덜어준 사람 고성홍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중앙로에 집을 짓고 살고 동창회 회장직을 맡게 되니 자주 만나게 되고 가끔 식사도 하게 되었다. 특히 동창의 경조사시 동창회 기금이 없으니 각자 부조금을 모아 동창회 명의로 부조하자 할 때 흔쾌히 응해주었고 농협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지만 시간을 내어 제주도 어디든 경조사를 같이 보러 다녔다.
이제 옛날의 고마움에 더하여 배로 고마우며 서로의 뜻을 눈만 보아도 알게 되었다. 어려우면 도와달라고 해서 신세지고 있다.
이 친구는 시계같은 사람이다. 아침 다섯시 전에 신제주 수목원을 다녀오는데 십수년을 한결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빠지는 법이 없다. 출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직하고 부지런함이 남달라 직장에서 가장 높은 농협제주도본부장을 지냈다. 직원들간에도 신의가 있어 지금도 옛 직원의 경조사를 일일이 돌아본다. 이런 것이 기특한 것이 아닌가. 내가 옛날의 은혜를 돈으로 갚을 수 없으니 그냥 지내지만 마음 속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진정한 친구로 지낸다. 이 친구 효도가 극진하여 홀어머니로 자기를 키워준 어머니 은혜를 생각하고 봉양을 극진히 하였고 장모마저 따뜻한 마음으로 모시고 효도한다. 사람 됨됨이의 근본은 효도에서 시작한다는데 아! 진실된 사람이로다.
또 한가지 이 친구나 나나나 건강을 위하여 골프를 치기는 하지만 나는 기동력이 없어서 이 친구가 한결같이 나를 태워다준다. 십수년 하다 보면 싫증도 나고 짜증도 나게 마련인데 그런 기색을 전연 않는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진실한 친구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아본다고 한다. 이 친구는 나의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정말 진실한 친구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갚는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 친구 김병현군과 필자(앉은 이) ⓒ영주일보

○ 김병현
이 친구는 은근히 속깊은 친구다. 노여움도 기쁨도 밖으로 표현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너는 나의 친구야 하는 법도 없다. 이 친구의 형이 북초등학교 42회 나와 같이 졸업했으니 어떻게 보면 일년 후배인데 내가 쉬어서 늦게 고등학교에 간 후 그것도 3학년이 되어서 알기 시작한 친구이다.
병현이에 관한 이야기는 본저 제8편 제1장 4절에서 언급했기로 여기에서는 간단히 적는다. 아무튼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그래도 이 친구는 지금도 전화도 하고 다정히 나를 대해준다. 부산에 살 때 그의 집을 찾아가 부인이 해주는 식사를 맛있게 먹고 온 적이 있다. 지금은 정년퇴임하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산다. 그이 아들이 장가를 안갔다. 잔치를 한다면 열일을 제쳐두고 꼭 가려한다.
옛날에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면 공치사라도 한번 할 듯한데 지금까지 함구한다. 만나면 은근히 자기 것을 주려 하고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다가온다. 나는 정말 좋은 친구 덕에 세상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 모두가 친구 덕분인가 생각할 때도 있다. ‘멀리 있어도 자네의 숨소리는 느껴지고 선한 눈이 나를 끌어안는 느낌이네. 친구야 우리 지나온 날처럼 변함없이 살아가자. 자네는 변치않는 사람이지만 혹시 내가 변하더라도 좋은 길로 이끌어주게. 나는 자네를 믿네. 와이프도 건강하기를 비네. 오늘 서툰 글씨로나마 자네에 대하여 몇 마디 단편적 생각을 적게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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