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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제주가 저의 몸통이라면 서귀포는 제 심장입니다”
강영은 “제주가 저의 몸통이라면 서귀포는 제 심장입니다”
  • 양대영 기자
  • 승인 2019.05.24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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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문인들](3)제주가 숙명이라는 시인 강영은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제주를 보는 눈도 그럴 것이다. 제주 사람들의 후한 인심, 천혜의 자연이 빚는 모양은 어떤 모습들일까? 예술가들, 특히 이 땅의 문인들은 제주를 어떻게 보고 표현하고 있을까. 또한 그들이 사유하는 바를 어떻게 옭아내고 있을까. 영주일보가 특유의 문학적인 감각과 감성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제주, 제주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제주문인들의 문학세상을 엮어 본다.[편집자주]

강영은 시인
▲ 강영은 시인 ⓒ영주일보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비문을 정으로 쪼아 뭉개고 땅에 묻어버린 자, 비문에 이름 새기기를 좋아하는 자, 비문을 무덤의 표석으로 세우고 싶은 자.

왼쪽으로 가자고 왼쪽 옆구리를 차는 자, 오른편이 낫다고 오른쪽 팔뚝을 잡아당기는 자,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중심을 버리는 자, 나만 옳다고 깃발을 내거는 자,

손에 피 묻힌 자, 총탄을 쏘는 자, 말 폭탄을 퍼 붓는 자, 역사로부터 도망치는 자, 자연을 외면하는 자, 섭리에 불충한 자,

하늘과 바람과 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슬픔을 차별하는 자, 통곡할 줄 모르는 자는 더욱,

나는 평화와 상생의 돌, 희디흰 얼굴뿐이니 어떤 색깔로도 나를 화장(化粧)하지 말라. 백세(百世) 뒤에도 천세(千歲) 뒤에도,

내가 죽으면 절대로 나를 일으켜 세우지 마라.
-강영은, ‘백비(白碑)’ 전문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박몽구(한양대 겸임교수) 시인은 ‘3·1백주년 100인 시집’ 『백년의 촛불』(2019, ‘3·1 백주년 시집 편집위원회’ 著, 시와문화 刊)에 실린 강영은 시인의 시 ‘백비(白碑)’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한다. “강영은은 위의 시를 통하여 본말이 전도된 우리 근현대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한편, 역사의 오명을 딛고 바른 이름이 새겨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비문을 정으로 쪼아 뭉개고 땅에 묻어버린 자, 비문에 이름 새기기를 좋아하는 자, 비문을 무덤의 표석으로 세우고 싶은 자'라고 일갈함으로써 '비문'으로 상징되는 한국 근현대사가 다시 씌어져야 한다는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좌우, 남북, 동서로 갈라놓은 분열과 상처의 역사를 바로잡아 통일의 길로 가는 역사를 백비에 새로 새겨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면서 시의 지향점을 명확히 짚었다.

정명(正名)이 새겨지기를 기다리면서 4·3평화공원에 누워있는 ‘4·3백비(白碑)-언젠가 이 비에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에 대비시켜 강영은의 시를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이 다가든다.

몸과 마음이 앓는 중년기여서 비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는 시인. 태어나서 고교시절까지 제주에서 꿈을 키운 사람, 더욱 좁혀서 서귀포가 태사른 고향땅인 강영은 시인. 지난 수년 동안, ‘절반은 제주 절반은 서울’에서 살았으나 시창작 강의를 재개하고 나서는 학기 중에 한 달에 한 번(5일) 정도 오는 편이라 한다., 방학 기간에라야 한 달 정도 내려와 오롯하게 지낸다. 고향 서귀포에 거처를 마련한 터여서 아예 눌러 살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향 제주, 특히 서귀포는 강영은 시인에게 태어난 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들려주었다.

“제주는 닫힘과 열림을 동시에 가진 공간이라 생각한다”는 것. “한 마디로 고향 제주는 제게 시와 삶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주가 저의 몸통이라면 서귀포는 제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유년시절의 풍경들이 시편 속에 녹아들어간 것을 보게 되는데 실제 유년시절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가장 완전한 미래란 과거다'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다. 저의 유년은 확실한 미래의 초상이라고 생각된다. 그 과거를 녹여내면서부터 시의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음은 강영은 시인과의 1문1답.

Q. 이제 한국시단의 중견 시인으로서 문단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펴고 계신데, 문학의 길, 특히 시인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A. 어린 시절부터 글짓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상상의 나래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에 흠뻑 빠졌었거든요. 그러다가 효돈중학교 재학시절이었어요. 2학년 국어시간 때 시를 습작했는데 선생님께 굉장히 큰 칭찬을 들었어요. 어린 마음이었지만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그때 단단히 새겼지요. 고등학교시절 제주시내 향원문학회에서 활동하는 등, 그 이후 다른 꿈을 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중·고교 시절 은사인 한기팔 선생님과 김순이 선생님은 저에게 있어서 '문학의 이상향'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향원문학회' 시절에는 현길언 선생님이 지도해주셨는데, 지금도 연락하며 지냅니다. 서귀포 남원 위미 출신 오승철·강문신 시인 같은 분들은 고향 제주의 자양분을 전해주신 분들이고요. 제 시의 바탕에 의례껏 제주가 있고, 서귀포가 담기는 연원입니다.

Q. 지난 2000년에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하셨고, 2002년 처녀시집『스스로 우는 꽃잎이』를 펴낸 것을 시작으로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녹색 비단 구렁이』『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까지 6권의 시집을 상재했는데요. 이처럼 활발한 시 창작을 하게 하는 원천적인 힘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A. 아, 시집 『녹색 비단 구렁이』 다음에 낸 『최초의 그늘』이 빠졌네요. 총 7권을 내었고, 두 개의 문학상 (시예술상 우수작품상(2007)과 한국시문학상(2012)을 수상했습니다. 2014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로 낸 시집이 『마고의 항아리』(2015)이고요. 가장 최근에 낸 『상냥한 시론』(2018)까지 7권의 시집을 상재했는데, 시에게 충실한 나날을 보낸 탓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Q. 시인으로서 역사의식도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간혹 위기의식이랄까, 딜레마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느끼는 시인으로서 사명은 어떤 겁니까?

A, 저의 경우는 건강이 나빠지면 딜레마가 찾아오는 듯 합니다. 시인은 자기가 태어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모국어의 숨결로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금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시는 어쩌면 재선충에 시들어가는 소나무밭과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마지막 남은 한 그루의 소나무가 어떤 금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나무가 주는 위로와 시들지 않는 희망 같은 것, 생명의 환희를 알게 해주는 그린벨트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영은 시인
▲ 강영은 시인 ⓒ영주일보

Q. 시편마다 강 시인의 삶, 일생의 편린들이 잘 녹아 있다는 시평이 있던데요. 시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제 시에 대한 평은 많이 있지만 시인인 저 개인에 대한 시인론은 아직 없습니다. 자평한다면 시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짝퉁이 아닌 진품으로 남고 싶습니다.

Q. 또, 관습적인 시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통한 시쓰기의 새 패러다임를 이루면서 특히 문명과 자연의 순응성 또는 대척점에서 드러나는 야생성이 시편에 나타나는 게 특징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강 시인의 작품세계를 스스로 소개해 주신다면?

A. 르네상스의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돌 안에 가두어져 있는 위대한 형태를 끄집어냈듯 고전의 현대적 변용, 그것은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나를 발견하는 일일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존재의 근원에 대한 해명이며 내 안의 무한자를 재발견하는 일입니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떠나 나의 바깥 또는 나와 절대적으로 다른 자를 향합니다. 이를 타자라 한다면 타자는 내가 어떠한 수단으로도 지배할 수 없는 절대적 외재성을 지닙니다. 시공을 초월한 나, 즉 주체를 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자’인 것이죠. 과거의 무한한 나와 불연속적 연속성을 띠게 되는 미래의 무한한 나로 변모해나가고 싶은 시의 발화 지점은 언제나 내 몸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몸 속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말들, 나는 그것을 받아 쓸 뿐입니다.

Q. 시 창작 강의도 하고 계신데요. 시 창작의 의미와 가치, 시가 주는 매력은 어떤 것입니까?

A. 시는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요약하기에는 어려운 속성을 갖습니다. 삶이 무엇이냐, 사랑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 것처럼 시 역시,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기술해나가기 위해서는 시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이해하고 시적 주체가 되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일정한 형식을 지닌 문학작품으로서 숙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Q. 랩 스타일의 시 낭송으로도 호응을 얻으면서 유명하시죠? 랩 스타일 시낭송, 시가 주는 감흥이라든지 시의 전달력 면에서는 어떻습니까.

A. 시를 감상하는 방법으로써 가장 보편적인 것은 지면을 통해서이지만 목소리를 통하여 감상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을 만큼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활자화된 시가 귀를 통하여 전달되는 색다른 감상을 하게 되는데요. 지면을 통해서 읽는 것은 시각만 필요할 뿐이지만, 낭송을 통하여 감상하는 것은 시각 청각 뿐 아니라 상황이라든가 분위기 등이 부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오감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전달하는 목소리는 시의 영역을 확장하는 제 2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시낭송은 단순히 시와의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하위 개념이 아니라 낭송이 지닌 미학적 가치에 따라, 듣는 사람의 정서와 상상력에 개입하여 감동을 주는 독립된 영역으로서의 자리매김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 방면에 종사하는 여러 전문가들이 다각적으로 고려중이리라 생각됩니다. 또, 여러분도 그에 대한 다양한 기술 및 방법을 습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산문시를 낭송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랩의 운율과 박자를 도입하여 낭송을 시도해보았습니다. 똑 같은 방식의 낭송법보다 관중들의 호응도가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주무시던 청중까지 잠을 깨어 흥겹게 리듬을 맞춰주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의 판소리 창법, 민요 창법, 시조창 읽기 방식 등 다양한 형태를 접목했을 때, 단순한 시낭송보다 효과적이고 전달력도 강하다는 걸 몇 번 체험했습니다.

낭송에 적합한 시를 선택하는 것이 물론, 가장 효과적인 낭송을 할 수 있겠지만 부득이 낭송에 부적합한 시를 텍스트로 삼아야 할 경우,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전위적 행위가 보편화된다면 그것 또한, 낭송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Q. 앞으로 어떠한 활동들을 펼쳐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A. 급하게 거처를 장만하느라 수년 전 한경면 판포에 거처하게 되었었어요. 이제 그 거처는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로 옮겨졌습니다만, 제가 태어난 곳과 더욱 가까워진 셈이죠. 고향 제주를 주제로 한 시산문집도 펴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Q. 끝으로 고향 독자들과 문학인 후배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은?

A. 어릴 적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며 더 넓은 곳으로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절반은 서울에 있지만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즈음 고향 제주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걸 잊지 말고 제주만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영은 시인
▲ 강영은 시인 ⓒ영주일보

<강영은 시인의 시편>

오래 남는 눈

뒤꼍이 없었다면, 돌담을 뛰어넘는 사춘기가 없었으리라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쓸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우는 어린 내가 없었으리라 맵찬 종아리로 서성이는 그 소리를 붙들어 맬 뒷담이 없었으리라 어린 시누대, 싸락싸락 눈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눈꽃 피어내는 대나무처럼 푸르게 눈 뜨는깊은 밤이 없었으리라 아마도 나는 그늘을 갖지 못했으리라 한 남자의 뒤꼍이 되는 서늘하고 깊은 그늘까지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제 몸의 어둠을 미는 저녁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으리라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첫사랑처럼 오래 남는 눈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 마음 속 뒤꼍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쇠소깍*, 남쪽

소가 드러누운 것처럼 각이 뚜렷한 너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남쪽은 날마다 흔들린다

창을 열면 그리운 남쪽,
살청 빛 물결을 건너는 것을 남쪽의
남쪽이라 부른다면

네 발목에 주저앉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움보다 깊은 색色, 살이 녹아내린
남쪽은 건널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너도 두 손을 가리고 울겠지,
눈 내리는 날의 너를 생각하다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가슴팍에 글썽이는 눈을 묻은
젊은 남자의 비애를 떠올린다

흑해의 지류같은 여자를 건너는 것은
신분이 다른 북쪽의 일,

구실밤잣나무의 발목 아래 고인 너는 따뜻해서
용천수가 솟아나온 너는 더 따뜻해서
비루한 아랫도리, 아랫도리로만 흐르는 물의 노래,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검푸른 혈흔이 남아 있는 마음이
무릎 팍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먼 바다로 떠나가는 남쪽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

* 쇠소깍은 서귀포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담수와 해수가 만나 이룬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효돈천의 하구이다.

죽은 돌

가까이서 보면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없는 가슴팍,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갯가의 돌덩이들은 늘 젖어 반지르르 하다

먼 바다에 바람이 일 때면 칭얼대는 파도를 끝없이 안아주는 황홀한 그늘,
뜨거운 불길에 눈도 코도 입도 녹아내린 몸뚱어리는 아랫뜨르 과수댁을 품은 돌하르방으로 서 있다

무너질 때 산목숨보다 더 크게 소리 내는 돌 더미는 죽은 돌이 아니다

태풍이 불때마다 복숭아 뼈까지 주저앉히는 유장하고 뜨거운 아버지,
석탄더미 같은 돌무덤 앞에서 나는 매번 발이 고꾸라져 어깨를 들썩이는 것인데
돌에서 왔다가 돌로 되돌아간 죽은 뼈들이 만 팔천名의 神을 불러오는 것인지

제삿날에는 죽은 돌이 산 사람을 지킨다

담쟁이

바위나 벽(壁)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을 넣고 싶다
단단한 살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生)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를 박고 싶다
히말라야 설원(雪原)의 정수리에
우뚝 선 알피니스트의 발가락
그, 굳은살에 박힌 티눈으로
이마 위 햇살을 붙들고 싶다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寄生)하는
모으든 슬픔이여!
초록의 광합성(光合成)을 하는
스스로의 언어(言語)로
벽의 경계를 지나
생(生)의 사닥다리를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文章)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상냥한 시론 표지

분재예술원에서

생각하는 정원에 가보셨나요?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
꺾이고 구부러진 세월 속에서
돌과 나무와 물이 하나가 된 곳

누군가의 생각을 만지거나
값을 따지거나 평가하지 말라고
몸과 마음이 서로 열어주는 곳

철사 줄이건 노끈이건
바람과 햇빛의 지렛대이건
역사라든가 전통이라든가 고향이라든가
세월이 서리서리 붙들어놓은

그것들의 뿌리가 되는지
뺨을 맞거나 어깨가 짓밟힌
굴곡진 바람의 손자국 아래에서

오랜 세월 굽이진 소나무와
주목의 희고 붉은 살갗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생각하는
저들 앞에 한번쯤 멈추어 서서
생(生)의 오랜 내력의 아픈 줄기를

몸 속의 뼈처럼 쓰다듬어보셨나요?

수선화

맨발의 대지를 열면 흙 알갱이 하나 하나가
얼마나 먼길을 걸어왔는지
뒤꿈치의 부스럼들 까맣게 부서져 내린다
까칠까칠한 살갗의 그 발바닥들이
단단하게 지면을 받쳐들어
흙으로 돌아간 어머니의 맨발도
간절한 속도의 그리움을 경작하는 것일까
수선화 알뿌리, 폐경기 지난 자궁이
자꾸만 환하게 부풀고 있다

어머니, 저 햇살의 젖을 물려주세요 당신의
몸 속에서 빠져 나온 알집이 토실토실 자라게요

캄캄한 기억을 열고
유선으로 부푼 젖 몽우리에 입술을 갖다대면
生에 무겁게 매달렸던
봄이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봄, 둥근 자궁이 열리고 있다

서귀포

서귀포에서는 누구나 섬이 된다
섭섬, 문섬, 범섬, 새섬이 배후여서
세연교 난간에 한 컷의 생을 걸어놓은 사람은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
서귀포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묻는다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
언덕에 서서 여기가 어디냐고,
서 있는 곳을 되돌아본다
당신이 서 있는 거기서부터 서귀포는
언제나 서쪽이다
녹두죽같이 끓는 바닷가 찻집에 앉아
노을처럼 긴 편지를 쓰면
기억만큼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는 언제쯤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불붙는 해안선을 지나면
게와 아이들이 남아 있는 자구리 해안
긴 문장이 따라오는
지상에서 가장 참혹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쓰고 있다면
당신은 서귀포에 있는 것이다
떠도는 섬을
당신의 마음속에 붙잡아 앉힌 것이다​

지귀도(地歸島)

한라산이 직구로 날린 직구섬
땅이 바다로 들어가는 그 곳에 열다섯 살 소녀가 사네
호적(戶籍)없는 피붙이, 내 소녀가 사네
무릎께로 툭, 떨어진 완만한 침강 해안
마음의 지귀도에 열다섯 살 내가 사네
자라지 않는 피붙이, 내 소녀가 사네
섬개개비처럼 물결 넘고 싶은
내 소녀. 바다의 옷소매 걷어 부치네
꿈 없는 꿈길처럼
내 소녀, 억새 나부끼는 황무지 걸어가네
발가락만 남은 새의 팔만 평 울음, 내 귀에 가득 차네.
내 소녀, 지금이라도 갈까
빨간 지붕 얹은 등대 아래 암초 솟아 난 해안지대로
내 소녀 운구(運柩)하는 너는 없는데
바다에 떠있는 낚시 배, 내 소녀 낚아 올리네
손 때 묻은 배 삯, 내 소녀 손바닥에 남아 있는데
갯바위에 앉은 바다안개, 멀어지다 옅어지네
옅어짐이 너무 넓어 내 소녀, 보이지 않네
물결 너머 빤히 ​보이는 마을에 남아 있을까
지워지지 않는 푸른 잉크의 시절
안녕, 내 소녀, 너에게 가는 배가 없네
안녕, 지귀도, 너는 언제나 바다로 돌아가네
지귀도. 이젠 아무도 살지 않네

*지귀도(地歸島), 서귀포시 위미리 해안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해 있는 무인도, 직구섬’ 또는 ‘지꾸섬’으로도 불린다.

상냥한 시론(詩論)

바람이 다리를 달아주었어요, 골목을 돌아나가는 검정비닐을 보며 두 다리를 종종거리는 준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보여주는구나

아가별이 울고 있어요, 엄마별은 어디 있을까요, 빌딩 사이 뜬 개밥바라기를 보며 두 눈을 글썽이는 준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밤하늘을 보여주는구나

늑대가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불쑥불쑥 어둠을 내려놓는 동물 병원 앞에서 손나팔을 만들어 부는 준아, 너는 짐승처럼 살아있는 어둠을 보여 주는구나

엄마는 계단끝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자, 보세요,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전철역 계단을 오르는 준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긴 계단을 보여주는구나

다섯 살배기 네 말들이 내가 읽은 올해의 가장 좋은 시구나

히키코모리 고양이​

​외톨이 고양이도 손톱발톱은 다듬을 것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사람의 말은 할 수 없겠지만 말의 감정은 알아듣고 말의 표정은 읽을 것이다

​쓰레기통은 제대로 훔칠 것이다 수사학적인 구름은 흘려보내고 생선 뼈다귀를 골라내는 손가락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열 마리의 물고기를 만날 때마다 열 개의 가시를 품는 건 어려운 일, 무표정을 지닌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어제의 골목과 작별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또 다른 내일과 악수할 것이다

​목덜미에 방울 대신 열쇠를 매달 것이다 통조림을 먹는 대신 하루 종일 현관 입구만 쳐다보며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잠의 입구를 수시로 들락거릴 것이다 눈물도 찔끔 흘릴 것이다

​히키코모리는 골목에 길들여진 애완고양이,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다가오기를 망설이는 가로등처럼 나를 노려보네 얼굴을 보면 할퀼지 몰라, 나는 놀라 달아나네

검은 동공 속에 감추어진 기다란 손가락이 불쑥, 나는 사람을 못 믿네 사람도 나를 못 믿네

이상한 연못

잉어 꼬리와 뱀의 네 발을 가진 흰 용이 지상으로 내려왔네 뱀의 형상을 버린 몸뚱어리는 잉어가 되어 차가운 연못을 제 세상으로 삼았네 비단 같은 비늘이 반짝일 때마다 진흙에 뿌리내린 물꽃이 버짐처럼 번졌네 버드나무는 낭창낭창, 아첨거리는 속성으로 연못을 휘감았네 연못 속 풍경이 휘어질 대로 휘어진 파장에 매혹되었네

미풍이 물결을 휘젓는 날이면 크고 아름다운 누각 아래 잉어 떼가 몰려들었네 “당신은 잉어 꼬리를 잡수어요. 저는 원숭이의 입술을 먹을게요.”​* 뾰족한 입술들이 누각의 그림자를 나눠 먹었네

“오늘은 창포꽃 피는 좋은 날이지만, 다음날이면 단풍 들어 시들고 만다오.”** 예언자의 입술이 연못 주위를 떠돌았지만 안개에 둘러싸인 연못 속에는 잉어의 꼬리들이 파닥였네 파문을 싸고도는 은밀한 놀이, 수건돌리기 놀이가 성행했네

연못가에 암매가 피었네 아래쪽에서 뻗어 올라간 큰 줄기가 눈이 먼 바위틈에 곁가지를 내었네 본가지가 되고 싶은 곁가지는 한 번 더 방향을 꺾어 못가를 희롱했네

향기를 매단 수간의 모양은 언뜻 보기에 삼절(三絶)의 구도 같았지만 그것은 잉어가 흐려놓은 연못의 구도,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어부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연못의 풍경 같아서 어부는 화살을 들어 잉어의 눈을 쏘았네

잉어는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로 올라갔네 어둠을 관장하는 검은 용을 애타게 불렀지만 햇살 퍼지는 구름 너머엔 어둠이 없었네 흰 용은 하느님에게 읍소했네 “너는 그때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었느냐?” 하느님이 물었네 “저는 그때 찬 연못에서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흰 용이 대답했네 “연못에 있는 물고기는 사람들이 잡으라고 있는 것이니 그 어부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너에게 잘못이 있느니라.”

비서를 기록한 오자서는 왕에게 묻네 “지금 모든 것을 버리시고 미천한 백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겠습니까?” 왕은 마시지 않았다고 하네***

파문과 추문이 끊이지 않는 색향처럼 흰 비단자락 스치는 소리, 물결이 물결을 밟고 가는 소리, 의문이 꼬리를 낳는 세상이 연못 속 풍경과 다름없으니 세상을 경계한 유령들에게 수초(水草)의 세상을 묻네

색향 대제에 가는 일과 미천한 백성과 술 마시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 이하의 「대제곡(大堤曲)」중의 구절 郞食鯉魚尾 帝食猩猩脣에서
** 이하의 「대제곡(大堤曲)」중의 구절 明朝楓樹老에서
***『사기(史記)』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서

마침 강영은은 자신의 시 창작 방법론이기도 한 ‘연못’의 미의식을 직접 전언하고 있어 주목된다(『이상한 연못』). 강영은은 물결에 따라 새롭게 재편되고 변주하는 질서, 중력과 부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중층적 질서를 사는 ‘이상한 연못”’의 언어를 통해 존재의 안과 밖, 지속과 변화, 의식과 무의식을 입체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기만의 개성적인 창작 방법론에 대해 스스로 ‘상냥한 시론’이라고 지칭한다(「상냥한 시론(詩論)』). 패턴화된 사고와 시각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언명의 강조이기도 한 이것은, 어린이의 무한의 상상력으로 기성의 표준화된 상상의 벽을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그의 고투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어 현실을 인식하는 싱그러운 희열과 해방감을 열어가길 바란다. 새로운 시적 방법론은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생명력을 개척해 나갈 때 완성형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 홍용희(문학평론가)

​강영은의 시를 읽는 독자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작품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그녀의 시가 갖는 개성과 무관하지 않다. 강영은의 시는 단순함을 넘어서 복합적인 구조를 지향한다. 복합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강영은의 시는 우리에게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건강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강영은의 건강한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에게는 자존自存을 세우는 그러한 언어가 필요하다. ㅡ 권온(문학평론가)​

시인 강영은은 1956년 제주에서 출생. 2000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스스로 우는 꽃잎이』,『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녹색 비단 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녹색비단구렁이』등 상재. 공동 기행시집『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마, 미얀마』, 12인 영역시집 『Faces of the Festival』이 있음.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세종 우수도서 선정, 서울과학기술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역임, 현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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