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4-08 23:00 (수)
[오롬이야기](2) 억새꽃 물결치는 아끈도랑쉬오롬
[오롬이야기](2) 억새꽃 물결치는 아끈도랑쉬오롬
  • 영주일보
  • 승인 2020.03.25 16:45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희주 오름메니저·연구가
도랑쉬오름에서 본 아끈도랑쉬
▲ 도랑쉬오름에서 본 아끈도랑쉬 ⓒ영주일보

ᄃᆞ랑쉬오롬은 어느 계절에도 좋으나 특히 4월이 더 좋다. 정상을 오르는 탐방로 좌우에는 제주철쭉이 피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이다. 제주철쭉은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의 연분홍 철쭉꽃과 달리 진한 핑크색이 가슴 설레게 한다. 5월, ᄃᆞ랑쉬오름의 서쪽 둘레 길로 나가면 진홍색 영산홍을 보게 된다. 산사태를 막기 위해 큰 돌들로 석축을 쌓았는데 그 사이사이에 피어나는 영산홍이 가슴을 물들인다.

늦은 봄. ᄃᆞ랑쉬 오롬은 뒤 늦게 잎 피우는 소사나무 숲이 있다. 소사나무는 자작나무과의 느릅나무와 비슷해 보이나 분류상 다른 종이다. ᄃᆞ랑쉬의 소사나무는 제주에서 가장 큰 군락지를 이루는 곳이다. 소사나무는 분재로 값비싸게 팔리는데 해안 인근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구좌읍 관내 오롬들에선 흔히 보인다.

ᄃᆞ랑쉬오롬의 식물은 250여 종이나 된다고 하지만 그 중에 소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벚나무, 동백, 철쭉, 영산홍 등은 심겨진 것들이다. 그 외 비목, 구럼비, 우묵사스레피, 상수리, 쥐똥, 보리똥, 찔레, 청미래, 국수나무 등의 본디 식물들은 그 개체수가 많지 않다. 불쌍한 것들이다. 굴러온 것들이 박힌 돌을 빼었으니 말이다.

ᄃᆞ랑쉬 오롬 정상 둘레길을 탐방 하노라면 키 작고 앙증맞은 봄꽃들을 본다. 봄맞이꽃, 산자고, 섬잔대, 각시붓꽃, 할미꽃, 물봉선, 둥굴레 등은 그 개체수가 아주 작은 편이고 엉컹퀴는 흔히 보인다. ᄃᆞ랑쉬오롬 봄꽃 중 최고의 퀸은 단연 새우란이다. ᄃᆞ랑쉬에는 노란새우란 군락지가 몇 곳 있고 흰새우란도 큰 나무 아래나 숲속에 숨어서 피어난다. 이 식물들은 그 환경에서 떠나선 살 수 없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말기 바란다.

가을꽃으로는 참취나물꽃, 미역취나물꽃, 바디나물꽃, 뚝깔나물꽃, 솔채나물꽃, 산부추꽃과 오이풀, 쑥부쟁이들과 키 큰 절구대, 산비장이, 시호 등이 있으나 흔치 않다. 특이한 것은 ‘가는잎향유’라는 허브의 일종이 있는데 만주에서는 소고기국에 넣어 먹는 ‘내기풀’과 같다. 그런데 우연하게 ᄃᆞ랑쉬오롬에서도 볼 수 있었다.

ᄃᆞ랑쉬 오름에서 볼 수 있는 동물 중 포유류는 노루, 족제비, 들쥐, 파충류로 구렁이, 살모사, 장콜레비라 부르는 제주도마뱀도 보이나 그 개체 수가 아주 적다. 양서류로는 뚜꺼비, 개구리, 도룡뇽 등도 있다하나 농약영향인지 최근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다.

조류로는 참새, 박새(ᄀᆞ망ᄃᆞᆨ새), 제주직박구리(찍꾸리), 산비둘기 등은 흔히 보인다. 그러나 동박(동백)새, 지바귀(직박뀌), 멧새, 때까치, 말똥가리, 황조롱이, 크낙새가 있다고 하나 최근에는 거의 보기 힘들다. 가끔은 텃새인 까마귀도 보이나 옛날 많이 보이던 떼까마귀와 기러기들은 희귀하나 휘바람새, 뻐꾸기, 종달새, 꿩은 지금도 탐방 중에 상쾌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끈ᄃᆞ랑쉬오롬은 ᄃᆞ랑쉬오롬 바로 앞에 있는 사유지 오롬이다. 탐방을 막지는 않으나 시설관리를 할 수 없다. 필자가 중학교시절 식목일에는 동원되어 나무를 심었는데 언제 사유지가 되었을까? 듣기로는 1970년대 전기를 가설할 때 각 가정에서 가설비를 당할 수 없어서 오롬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끈ᄃᆞ랑쉬의 ‘아끈’이란 ‘버금가는’, ‘둘째가는’ 것이라 하나 제주시문화대전은 ‘작다’는 뜻이라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맞는 말이 아니다. 바다 물때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을 사리(일곱물)라 하여 물 빠짐이 제일 클 때다. 사리(일곱물)에서 헤어보면 8물-9물-10물-11물-12물이 되고 조금-약근조금-한조금-1물-2물-3물-4물-5물-6물-7인 사리가 된다.

조금은 물 빠짐이 가장 적은 때인데 제주에서는 ‘죄기, 약근조금은 ’아끈죄기’라 한다. ‘ᄃᆞ랑쉬’를 사리, 7물이라 한다면 아끈ᄃᆞ랑쉬는 8물-9물-10물-11물-12물-조금(13물)-아끈조금(14물)-한조금(15물)이니 ‘적다’는 뜻이 아니라 ‘낮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8등급이 낮으니 ‘한참 차이난다/천지 차이다, 등수를 셀 수 없으니 ‘변변치 못하다’는 뜻이 맞을 것이다. 아끈ᄃᆞ랑쉬는 ᄃᆞ랑쉬에 가려 세화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ᄃᆞ랑쉬 뒤에 숨어 있는 낮은 오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ᄃᆞ랑쉬는 위치에 따라 다르나 아끈ᄃᆞ랑쉬는 어디서 보나 비슷하다. 제주오름들 중에 ᄃᆞ랑쉬, 아끈ᄃᆞ랑쉬라는 이름은 정말 시적詩的이다. 어떻게 산山 중 오름을 바다에 뜬 섬島처럼 물때로 비유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 대부분 오름은 큰오름-족은(작은)오름이라한다. 그런데 ‘아끈’이라는 명칭을 쓰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

아끈ᄃᆞ랑쉬는 정상에서나 밑에서나 그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오롬 일대는 경작지들로 옛날에는 오롬 위에도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아끈ᄃᆞ랑쉬오름은 스코리어scoria라는 송이=분석이 많으나 아끈ᄃᆞ랑쉬는 지번地番만 보아도 산山번지가 아니다. ᄃᆞ랑쉬는 꽤 큰 화산송이들이 흔하나 아끈ᄃᆞ랑쉬는 질흙이라 탐방 시 미끄러지기 일쑤다.

아끈ᄃᆞ랑쉬는 비고 58m의 낮은 오름으로 오르내림의 차이가 없는 원형분화구다, 좁지 않은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으니 ᄃᆞ랑쉬 탐방과 곁들여 볼만하다. 서북쪽은 ᄃᆞ랑쉬에 전망이 가리나 다른 방향은 열려 있어서 남쪽 오롬 군락들도 볼 수 있다. 특히 아끈ᄃᆞ랑쉬에서 보는 용눈이는 가장 멋있다. 새봄에는 임신한 용눈이 여인이 유채꽃밭에 누워 있고, 억새꽃 물결치는 가을에 용눈이 여인은 억새밭 가운데 누워 있다. 그걸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아끈ᄃᆞ랑쉬에서도 제주도 동녘바다가 훤히 보인다. 특히 이곳의 억새는 제주도 오름들 중 단연 으뜸이다-물론 저마다 자기 동네 오롬이 으뜸이라 하고 자기 동네 오롬의 억새가 제일 멋있다 할 것이다. 아끈ᄃᆞ랑쉬 억새꽃 사이로는 동녘의 지미오롬, 청산오롬(일출봉), 윤ᄃᆞ리오롬 등을 보는 맛이 다르다. 그래서 아는 사진사들은 아끈ᄃᆞ랑쉬를 사랑하여 찾는다.

아끈ᄃᆞ랑쉬는 식물 분포 등이 다양하지 않고 오직 억새밭 뿐이다. 사유지여서 탐방시설도 없고 출입이 용이하지도 않다. 지금은 아끈ᄃᆞ랑쉬 앞에는 나무들이 적으나 북쪽 등성이는 잡목들이 우거졌고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덤불이 엉켜있다. 오롬 정상에는 후박나무와 보리똥나무 몇 그루와 찔레, 칡 등이 고작이다. 그러나 억새가 자라고 나면 이 모든 게 묻혀 버린다.

ᄃᆞ랑쉬/아끈ᄃᆞ랑쉬 북쪽 정류소(다랑쉬북로)에서 남쪽 정류소 사이 길은 1차선 시멘트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복 2차선 확포장공사가 3년째인데 아직 미완성이다. 이 길은 비자림~ᄃᆞ랑쉬북쪽정류소~ᄃᆞ랑쉬/아끈ᄃᆞ랑쉬~도랑쉬굴~ᄃᆞ랑쉬남쪽정류소에 이르는 길이다. 이 지점은 손지오름~용눈이~윤ᄃᆞ리~종다리~성산포방면으로 나가거나 ᄃᆞ랑쉬남쪽 정류소/손지오름(서남쪽)~높은오름~송당~거슨새미~번영로~제주시로 이르는 큰 길이 트이게 된다.

ᄃᆞ랑쉬/아끈ᄃᆞ랑쉬 남쪽(한라산쪽) 100m쯤을 더 가면 잃어버린 ᄃᆞ랑쉬 마을이 있다. 지금은 비석 하나 밖에 없으나 대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의 푸른 나무들이 4.3 당시 소거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왼쪽으로 가면 ‘다랑쉬굴 입구’ 팻말이 보이고 200m 쯤 더 가면 4.3 당시 난리를 피해 굴에 숨어 있다가 폭도로 오인 받아 집단학살 당한 역사 속의 ‘ᄃᆞ랑쉬굴’로 가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묵념하고 오는 것 밖에는 . . .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라는 동화책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화초중고를 졸업한 이 마을 출신 박재형선생의 작품인데 제주도의 당시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ᄃᆞ랑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주의 가슴 아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성조 2020-03-31 20:37:44
아끈도랑쉬오름에서 보는 억새 끝내줍니다

문희주 2020-03-26 19:21:25
대전에 4.3 기념비는 처음 듣는 얘기내요. 감사합니다. 기회 될 때에 찾아보겠습니다.

박해동 2020-03-26 06:00:03
아끈다라쉬오름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듯 하네요 그리고 여기 다랑쉬오름과 관련된 4.3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아린 마음으로 닿아집니다 내고향 대전 산내 마을에는 4.3 추모비가 있는데 이글을 연재하시는 문교수님께서 언제 한번 방문하시면 좋겠습니다 . 연재글을 읽으며 제주의 토속적인 언어들에 대해 잘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라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발행일 : 2011-09-22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영주일보
  • 제호 : 영주일보
  • 발행인 : 유태복
  • 편집인 : 양대영
  • 영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영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youngjuilbo.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