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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14) 나샤이래, “이리오라!” 부르는 나시리오롬
[오롬이야기](14) 나샤이래, “이리오라!” 부르는 나시리오롬
  • 영주일보
  • 승인 2020.05.1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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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서북쪽 난산리에서 본 나시리오롬
▲ 서북쪽 난산리에서 본 나시리오롬 ⓒ영주일보

‘나시리오롬’은 성산읍 난산리 2683번지로 북쪽-바다 쪽으로는 유가메, 남쪽-한라산 쪽으로는 모구리오롬 중간에 있다. 나시리오롬은 해발 164m, 비고 29m로 세 오롬은 모두 성읍~수산 간 도로변에 북-남-동으로 삼각점을 이룬다.

세 오롬은 각각 30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도로상 어디에서도 훤히 보인다. 현재 나시리오롬은 초보자들이 말 타는 승마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시리오롬 북쪽은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시멘트 길로 경계를 이룬다. 그 길 맞은편은 캠핑촌(Caravan Guestonly)이 있다.

나시리의 한자 표기 중 나시악螺施岳의 ‘소라라螺는 나선모양의 조개, 술잔, 소라 껍데기로 만든 술잔’의 뜻이고 ‘시施는 베풀다, 퍼지다, 행하다, 널리 전하여지다’는 뜻이다. 또한 나시리악羅時里岳, 羅時岳, 羅瑟伊岳로도 쓰이는데 ‘나羅는 새그물 나, 깁다, 벌다, 벌리다’는 뜻이고 ‘시時는 때 시, 때맞추어, 때를 어기지 않다’ 또 ‘시瑟는 큰 거문고 모양, 엄숙하다, ‘리는 마을리里’, ‘이伊는 저, 그, 이, 등의 발어사, 어조사로 실제 뜻은 없고 보조로 쓰인다. 한글로도 ‘나시리, 나스리, 나ᄉᆞ리’ 등 그 의미, 유래도 불확실 하다고 전한다.

성산읍 수산에서 표선면 성읍으로 가는 도로상 우측을 보면 벌판 가운데 낮고 비스듬하게 동서로 길게 누워 있는 오롬이 보인다. 언 듯 보면 푸른 벌판 위에 뒤집어진 작은 보트를 보는 듯하다. 오롬이라기보다 벌판 가운데 언덕인 듯하여 “저게 오롬인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그게 나시리오롬이다.

나시리 오름 굼부리
▲ 나시리 오름 굼부리 ⓒ영주일보

낮은 언덕을 쉽게 올라보면 북동쪽으로 얕게 우묵 진 굼부리를 본다. 얼른 보면 굼부리라 보기 어려울 만큼 평평한 곳에 사면이 낮은 언덕을 이루니 “저게 굼부리인가?” 생각하게 된다. 기록에서 보면 본래 원형 분화구였는데 한쪽이 용암유출 시에 열리며 말굽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시리 굼부리는 용암유출로 열렸다는 굼부리는 너무 낮다. 어쩌면 승마장으로 팔리기 전 제주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굼부리 동북쪽으로 우마차를 이용하고 밭을 갈며 인위적으로 열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등성이는 밋밋하게 동북쪽 밭들과 같은 높이다.

5월 초, 나시리오롬을 올라보니 푸른 벌판에는 한 뼘도 안 되는 들꽃들이 초롱초롱하다. 돌양지꽃, 가락지나물꽃, 등심붓꽃, 벼룩나물(별꽃), 크로바 등과 한 뼘쯤 되 보이는 미나리아제비꽃 등이 지천이다. 오름 위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있을 뿐 훤한데 낮은 언덕 너머로 유가메와 모구리오롬이 잡힐 듯 가깝다.

서남쪽으로 승마영업장이 있지만 오름 한 바퀴를 순환로를 따라 차를 타거나 걸어서 돌아보았다. 북쪽 경사진 비탈에는 우묵사스레피, 예덕나무, 참식나무, 천선과 등 식재한 삼나무들 사이에 끼어있다. 북동쪽으로는 농지들로 이어져 있고 동남쪽으로는 밭담과 철망 사이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와 하얀 찔레꽃들이 한창이다.

남동쪽 밭에서 본 나시리오롬
▲ 남동쪽 밭에서 본 나시리오롬 ⓒ영주일보

‘나시리’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많은 정보를 검색해 보았으나 나시리오롬의 명칭과 유래는 불확실 하다. 한국어는 아닌 것 같고 한자도 아니다. ‘라’는 ‘새그물라羅, 소라라螺’를 쓰거나 ‘시’도 ‘때시時’, ‘큰거문고시瑟’를 쓰기도 하고, ‘리’도 ‘저이伊’ 또는 ‘마을리里’를 쓴다는 것은 한자를 빌어 음차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인근 모고리(모구리)와 유가메(유건애)가 몽골어였다면 이 역시 몽골어가 아닐까?” 할 때 떠오르는 몽골어가 생각났다. 몽골에서 ‘이리오라’ 할 때 ‘나샤이레에 наашаа ийшээ’라 한다. ‘나샤’는 이리, 이쪽으로, ‘이르’는 ‘오다, ’이르에르‘는 ’오세요‘라는 뜻이다. 몽골 이민자들이 ‘이리오세요!’ 부를 때 ‘나샤이레에’라고 한다. ‘나샤이르레-나사이레-나시레-나시리’로 변형된 것으로 사료된다.

왜 “이리오라!” 불렀을까?’ 모고리는 뱀이 우글거리는 돌짝 산지인데 ‘나시리’로 내려 와보니 평평하고 기름졌다. “야! 좋은 땅이야!” 소리쳤다. “나샤이르레(이리와봐!)”하고 친구들을 불렀을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이를 ‘나시레-나시리’로 부르게 된 걸로 보인다. 그들이 ‘유가메’에 이르러 외쳤다. ‘유를칸(왕이 준 축복이야!)’ 제주로 와서 좋은 땅을 찾던 이들, 반신반의하던 이민자들이 모구리를 거쳐 ‘나시리’에 이르러 좋은 땅을 보고 정착하게 된 것이다.

몽골 이민자들이 제주를 낙토로 여기며 700년을 살아왔다. 제주인으로 살며 고국 몽골로 돌아가지 못했다. 소와 말을 전해주고 함께 밭 갈고 메밀도 씨도 뿌려 거두고 연자방아를 돌려 곡식도 빻고 말똥으로 군불도 때며 함께 살아왔다. ‘버릇없이 군다’고 “몽근 놈”, ‘바다 일도 모르고 게으르다’고 “몽근 년”이라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중국에서 20여년 살며 외몸골, 내몽골을 자주 오가며 보았다. 거기서 제주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았다. 이민족이었으나 이 땅 제주에서 다시 몽골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주인 되어 700년, 좋건 싫건 제주인의 DNA 속에는 몽골의 피가 흐른다. 나시리오롬을 둘러보는데 먼데서 뻐꾸기가 울더니 바로 옆에서 화답한다.

뻐꾹 뻑뻑꾹/
몽골은 없어/ 원나라도 갈 수 없어/
모골,/ 모골은 뱀 나오는 몹쓸 땅
나샤이레/ 이리와 봐 나시리
유를칸/ 왕이 준 축복의 땅/ 유가메가 여기야
여기는 낙토/ 제주가 낙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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