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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원](13) 담임 선생
[시의 정원](13) 담임 선생
  • 영주일보
  • 승인 2020.05.14 21: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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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미 시인
《스승의 날 특선》
조향미 시인
▲ 조향미 시인 ⓒ영주일보

담임 선생

조향미

아침에 출석부 들고 교실에 들어서면
인상 쓸 일 수두룩하다
앉아라 줄 맞춰라 휴지 좀 주워라
수희 나영이 지각이구나
이슬인 오늘도 결석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보고
전달사항 몇 개 툭 던져두고 나오면
아이들 몇 명 쭐래쭐래 따라 나오며
선생님 오늘 야자 빠져야 해요
치과 가야 해요 생리통이 심해요
학원 보충 있어요 엄마 생신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점심시간에 내려와
교직 이십년 의욕도 열정도 시들해진 담임 생활
올해 애들은 유난히 천방지축이야 투덜대지만
생각해보면 마음으로 미운 놈 하나 없다
작년 처음 만나 일주일에 두어 시간 수업할 땐
저기 몇 놈들 정말 고운 구석 없이 밉상이더니
담임 맡은 올해 사흘 걸러 지각하고 결석하는 놈도
온 교실 제멋대로 어지르고 다니는 놈도
수업시간 꾸벅꾸벅 잠만 자는 놈도
곁에 와서 뭐라 뭐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마음 풀어진다 잔소리하다가도 픽, 웃음 나온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그 녀석들
지각하고 결석하고 농땡이 칠 만한 딱하고 아픈 사정
모르는 척 쌀쌀하게 나무랄 수만 없다
아이들 처음 만나면 그놈이 그놈 같이 보이다가
차츰 얼굴이 보이고 수업 태도 성적도 따지다가
한 일년 아침저녁으로 부대끼다 보면
몇 겹의 옷 안에 가렸던 본디 맨살 드러난다
멀고 아련한 풍경 아니다 사랑은
풀썩이는 먼지 마시며 동거하는 일이다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영주일보

푸른 5월, 제 39회 스승의 날이다.
교육부는 교원 2983명 표창 전수하고, 코로나로 인해 행사는 취소 되었지만 17개 시도 스승의 날 감사 영상 메시지를 공유한다고 한다. 코로나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스승 하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이 생각난다.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에 그곳 출신인 존 키팅이 새 영어교사로 부임해 오는데 특이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을 외치며 그는 미래(대학 입시, 좋은 직장)라는 미명 하에 현재의 삶(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준다.
다행히도 나 또한 여고 시절에 '존 키팅' 같은, 조향미 선생님 같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었다. 덕분에 긴 방황을 끝내고 문학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더 놀란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 그 스승님을 교수님으로 다시 모시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끈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스승이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 했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 감사하다는 절 올리고 싶다. 여고 시절, 저의 부족한 시를 뽑아서 경연대회에 출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그 기억이 저를 이곳까지 오게 했습니다, 라고...
이 시는 가장 최근의 학교 풍경을 묘사한 시라 생각되어 앞뒤 재어볼 겨를도 없이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야자'니 '생리통', '농땡이'니 '수희, 나영, 이슬'이라는 이름들만 봐도 시인이 바로 여학교 교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여고생들을 바라보는 여교사의 심리를 솔직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아니 이 나라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사랑까지도 전달하고 있다.
스승, 감사, 은혜, 존경, 사랑이라는 언어는 이미 우리 삶에 깊이 뿌리박혀 더 이상 울림을 주지 않는다. 이 시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존경해달라,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학교 생활하면서 싹트는 스승과 제자와의 인간애가 은근슬쩍 와닿는다.
'곁에 와서 뭐라 뭐라 몇 마디 니누다 보면 / 마음 풀어진다 잔소리하다가도 픽, 웃음이 나온다'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진심을 툭 던져놓는다. 그리고 '몇 겹의 옷 안에 가렸던 본디 맨살 드러난다'며 아이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껴안아주는 스승의 넓은 가슴이 느껴진다. 또한 마지막 행 '사랑은 풀썩이는 먼지 마시며 동거하는 일이다'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이 시는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덧붙여 그 선생님을 존경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눈에 선하다. 마음을 설레게 한다. 훈훈하게 한다. 이 시의 주제가 이곳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에게 이런 교사가 있었던가, 자문하게 된다.
조향미는 교사 시인으로, 1984년 뭉크지 <전망>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시집으로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있네>,<새의 마음>,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봄 꿈> 등이 있지만 더 주목할 것은 가르치는 고2 아이들과 엮은 문학시간에 쓴 고등학생 단편소설 <작전명- '진돗개'>, 문학을 즐기는 일 년간의 문학수업을 책으로 엮은 <우리의 문학수업>, <시인의 교실> 등등으로 이미 입시로 마음이 굳어버린 이 나라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문학 수업은 작품해설 암기와 문제풀이로 되어 있어 실망했지만 그녀는 시를 깊이 읽게 하여 8천자 서평을 쓰게 한다. 그리고 시를 자신의 경험과 연관지어 에세이를 쓰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쓰게 했다. 칠판에는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 진하게 쓰면서 말이다.그녀의 시들도 한결같이 순수와 진실의 색으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못난 사과', '국화차', '몸', '온돌방', '시 창작 시간' 등 제목만으로도 그녀의 시 세계를 예감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존 키팅 선생님처럼 책을 찢고 책상 위에 올라가는 등 파격적인 수업을 하면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될까. 불가능한 교수법이라 매장된다.
그런 면에서 가장 한국적인, 가장 현대적인 교사가 조향미 선생님이라 생각되고 가장 현명한 교수법이라 생각된다. 물론 도종환, 김용택, 안도현, 이정록, 나태주 등 알려진 교사 시인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분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문학적 등불이 되신 분들이기에 비교한다는 건 무리수라 생략한다.
만약 내가 여고 시절로 돌아가 고3 담임선생님께서 "사범대 국어교육과로 가서 국어선생님 해라!"했을 때, "아뇨. 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라고 답하지 않고 "네!"하고는 국어선생님이 되었다면 조향미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지금은 그나마 독서논술강사라는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학교, 도서관, 학원에서 그녀처럼 아이들에게 독서 및 문학 지도를 하고 있다.
조향미 선생님 문학수업 방법이 내가 꿈꾸던 교수법이랄까.
다음 시를 읽으며 그녀는 천상 교사요, 천상 시인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들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조향미 교사 시인이 참 좋아진다. 그리고 이런 시를 품고 살아가는 교사가 아직 우리나라 교육현장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고, 우리의 미래학교에게 희망적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스승님들이여, 아이들의 꿈을 꺾지 마시고 우주 곳곳에 찬란하게 피울 수 있게 따뜻한 용기와 희망의 명언과 명문장을 나눠 주시길...! 나를 찾을 수 있게 빛을 밝혀주신 모든 스승님, 감사합니다!

그런 꽃도 있었나/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지만/ 혹 고요한 눈길 가진 사람은/ 야트막한 뒷산 양지바른 풀밭을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만나게 되지/ 비바람 땡볕 속에서도 오히려 산들산들/ 무심한 발길에서 밟히고 쓰러져도/ 훌훌 날아가는 씨앗을 품고/ 어디서고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 저 풀밭의 초롱한 눈으로 빛나는 하얀 별꽃/ 허리 굽혀 바라보면 눈물겨운 작은 세계// 참, 그런 눈길 고요한 사람의 마을에는/ 들꽃처럼 숨결 낮은 시들도/ 철마다 알게 모르게 지고 핀다네//(조향미 시인의 '들꽃 같은 시' 전문)
[글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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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실 2020-05-16 11:03:40
늘 추천 시(인)만큼이나 좋은 글 재미있게 읽고 느끼고 마음 살 찌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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