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7-13 16:32 (월)
[오롬이야기](20) 영험한 곳에 물 담긴 물영아리
[오롬이야기](20) 영험한 곳에 물 담긴 물영아리
  • 영주일보
  • 승인 2020.06.25 09: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남쪽등반로서 본 물영아리
▲ 남쪽등반로서 본 물영아리 ⓒ영주일보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가로질러 서귀포로 나가는 산간도로로 제일먼저 만들어진 5.16도로가 있다. 또한 제주시에서 한라산 자락 중산간을 잇는 도로로 남조로가 있다. 남조로南朝路는 제주시 동쪽 첫 번째 읍인 조천읍에서 서귀포시 표선면을 지나서 동쪽 첫 번째 읍인 남원읍 잇는 도로이다. 이 남조로에 높은 두 개의 오롬이 있으니 물영아리와 마른영아리이다.

수영산水靈山이라고도 불리는 물영아리는 해발508m, 표고128m로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189번지에 있다. 두 오롬을 마주보는 평지는 옛사람들이 ᄆᆞ쉬(말과 소)를 먹이던 촐앗(목초지)지경이다. 조선후기 제주목사로 부임한(1841~1843) 이원조는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정의현 편에 수영산은 “정의현(성읍) 북쪽 삼십리에 있고, 그 꼭대기에는 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기타 제주의 고서나 고지도에도 많이 나타나 있다.

수영산水靈山이라는 말은 ‘물이 담긴 영험스런 산’이란 뜻이니 물영아리의 의역이 분명하다. 물영아리의 ‘영’은 ‘영험靈驗하다, ‘아리’는 만주어로 ‘산’이라 전해지나 필자는 만주에서 20년 이상 살았지만 산을 ‘아리’라고 부르는 것은 들어 본바 없다. 또한 만주족은 청나라를 중국 땅에 세운 뒤 한족화 되버려서 만주어를 아는 사람은 중국에서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중국은 만주어를 회복하려 하지만 성공사례가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만약 ‘아리’가 만주어라면 연길시에 유일한 오름인 ‘모아산帽兒山(모자 모, 아이 아)’공원이 있는데 조선족들은 열의 열이 ‘모아산’이라고 발음하나 한족들은 한자음으로 ‘모얼산’이라 발음한다. 산과 강은 오래전부터 전래되던 말을 쓰는 관습이 있으니 만주어일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연길시 누구에게 물어도 ‘모아산’이 만주어라 말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모아산은 영락없이 제주 오롬같이 돈돈한 들녘에 도도히 유방처럼 솟아 있다. 이 오롬은 연길시와 용정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연길과 용정 일대에 조선족들은 이 지경에서 세계 유일의 ‘사과배’ 과수농사를 한다. 봄에는 하얗게 펴오르는 사과배꽃이 장관을 이루는 아름다운 곳, 가을에는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제주의 밀감 맛을 잊게 하던 곳이다.

만주 땅인 연길시에서 확실히 만주어라고 하는 지명이 한 곳 있다. 연길시 중심을 흐르는 ‘부르허퉁’이라는 강江이 있는데 ‘부르’는 버들강아지를 피우는 ‘버드나무’이고, ‘허河’는 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연길사람들은 모두 ‘부루허퉁허’라고 부른다. 압록강가에도 ‘퉁허通河’라는 시市가 있는데 이는 ‘강으로 통한다.’는 뜻이니 같은 뜻으로 보인다.

물영아리 정상의 습지
▲ 물영아리 정상의 습지 ⓒ영주일보

어째서 만주어가 제주에 있을까? 본래 고량부 삼성은 제주 본토인이 아니고 고구려 고씨, 양맥족(동예맥-서예맥) 양씨, 부여 부씨로 모두 만주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살던 곳에 말을 가져다 쓸 수 있다. ‘아리’라는 말이 만주어가 사실이라면 아마도 제주 원주민이던 폴리네시안을 제압하고 ‘탐라국’을 세운 고량부 삼성에 의해 불려진 제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만주어에서 파생되어 발전한 한국어로 보인다.

물영아리의 ‘아리’는 ‘항아리’의 ‘아리’이거나 상어 중에 무서운 이빨을 가진 백상아리, 청상아리의 ‘아리’로 ‘무서운 이빨을 가진 주둥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물영아리는 ‘물을 담고 있는 영험한 오롬’ 또는 ‘경외심敬畏心-옷깃을 여미게 하는 두려움이 깃든 오롬’이 될 것이다. 또한 ‘물장오’의 ‘오리’나 물영아리의 ‘아리’는 같은 말로 보인다. 본래 제주어 ‘ᄋᆞ리’는 아래ㆍ가 없어지며 한국어에서 ‘아리’나 ‘오리’로 표기되기에 같은 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제주 오름들 중에 산정호구를 이루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제주시 삼양오롬(원당봉), 어승생이, 물장오리와 조천읍 물찻오롬, 한림읍 금오름, 세미소, 서귀포시 남원읍 물영아리와 동수악, 사라오롬 등 9곳이다. 이중 8개 오롬은 모두 원형 분화구를 이루는 곳인데 삼양오롬만은 말굽형 분화구이다.

2009년 봄, 물영아리는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18개국이 습지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맺었는데 한국은 2018년 11월 현재 23곳의 습지가 등록되었다. 이중 산상습지는 강원도 대암산용늪(1997), 오대산국립공원습지(2008), 제주도 물영아리(2006), 물장오리(2008), 한라산1100고지습지(2009)등 6곳이 있는데 3곳은 제주도에 있다.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곳은 환경부에서 관리하는데 물영아리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어 한적한 시골 오롬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며 날로 변모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나무계단이 만들어지고 정상 서쪽 둘레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렸다. 최근(2020년 여름) 탐방했더니 잣성으로 이어진 목장길에는 철조망이 새로 생겼고 야자매트도 다시 교체되고 있었다.

2012년 송중기와 박보영이 주연한 늑대소년을 촬영하며 물영아리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황혼기의 부유한 할머니는 손녀(박보영)가 남자친구의 경제력을 운운하며 대충 사귀다가 차버리는 현실적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47년간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늑대소년(송중기)의 모습에 감동하여 자신의 순수했던 옛 자아를 회복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자유로운 여인의 첫사랑이 물영아리의 회복과 같아 보인다.

물영아리의 서쪽 전망대
▲ 물영아리의 서쪽 전망대 ⓒ영주일보

물영아리는 서사면 쪽으로 용암류가 돌출하여 다소 불규칙한 형태이다. 스코리아콘은 물을 뚫고 가는 성질이 매우 높은 화산체이다. 그래서 사면에 지표류가 발생하기 어렵고 산정화구호가 출현하기도 어렵다 한다. 그러나 물영아리는 화구호를 감싸던 많은 나무 잎들이 떨어져화구호로 쌓여 뻘(개흙) 같은 것이 습지를 이루어 물이 고인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 여름에 왔을 때 물영아리는 가득히 물이 고여서 백록담보다 더 신비해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초봄에 왔을 때는 바닥이 들어나 보이더니 그래도 장마가 시작되어서인지 물영아리에 화구호에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만수된 화구의 신비로움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물영아리를 오르는 양옆에는 심겨진 삼나무도 보이나 제주산 상록수들이 더 많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비목나무이다. 비목하면 가곡‘비목’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비목이라는 나무가 있다. 비목은 낙엽수(갈잎나무)로 키 10여 미터, 지름이 한 아름까지 자라는데 비자림이나 다른 오롬에도 가끔 보인다. 또한 정상에는 떼죽나무가 종종 보이고 고목이 된 진달래나무들을 볼 수 있다. 제주에서는 여기서 만큼 고목의 진달래를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또한 구지뽕, 산뽕나무도 꽤 보이고 몇 그루의 보리똥 나무도 보이고 키 작은 꽝광나무도 조금 보인다.

물영아리 최고의 꽃은 눈 속에 피어나는 복수초다. 복수초 단지는 입구와 서남쪽 잣성길 끝 지점 두 곳에 있다. 새우란 단지는 계단을 오르는 등성이와 서쪽으로 내려가는 등성이에도 있다. 등반로 계단가의 새우란은 은색 새우란이고, 정상 서쪽으로 100미터 하산하는 길에는 금새우란 꽃도 핀다. 진분홍 철쭉꽃도 져버린 오롬, 여름의 절정인 물영아리에는 청자색으로 피어난 한라돌쩌귀(독초)와 보랏빛 꿀풀, 음지에 꽃대를 세운 천남성(독초) 등도 보인다.

물영아리의 아쉬움은 키 큰 나무들이 가려서 정상 남쪽은 볼 수가 없다. 가려진 나무들을 감발하던지 할 수 없다면 높은 전망대가 필요해 보인다. 오롬을 가득 채운 나무들은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오롬 탐방로의 여름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탐방 때는 바람을 막아주어서 좋기도 하다.

물영아리 서쪽 전망대에서는 제주 북동쪽 방향인 조천읍 거문오롬, 부대오롬, 부소오롬, 까끄레기, 민오롬, 구좌읍의 거친오롬, 비치미, 표선면의 큰사스미, 족은사스미, 백약이, 좌보미, 영주산, 따라비, 성산읍의 모구리오롬 등이 보인다. 특히 대한항공 연습비행장과 봄에는 유채꽃과 왕벗나무길로 유명한 녹산장길도 훤히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사려니숲길, 절물숲길, 서귀포숲길, 비자림숲길 등에 비하면 물영아리를 찾는 이가 작다. 지난겨울에 보니 노루가족들이 목초지에서 제 세상인양 먹고 뛰더니 오늘은 기름이 번드르한 황소들이 유유자적하다. 마치 천국인양 제주의 서정을 그려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해동 2020-06-29 11:08:25
참 유익하고 맛깔 나는 글 입니다
문교수님의 해박한 지식들이
오름 이야기에서 쏟아져나오는군요
다음 연재를 기대합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라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발행일 : 2011-09-22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영주일보
  • 제호 : 영주일보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영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영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youngjuilbo.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