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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원](25) 거리에 비 내리듯
[시의 정원](25) 거리에 비 내리듯
  • 영주일보
  • 승인 2020.08.06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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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폴 베를렌느
▲ 시인 폴 베를렌느 ⓒ영주일보

거리에 비 내리듯

폴 베를렌느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아름다움이여
우울한 마음에
오 빗소리, 비의 노래여

울적한 마음을 따라
까닭모를 눈물이 흐른다
왠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

진정 까닭모를 슬픔은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워라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영주일보

사실, 처음엔 미국 네티즌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인 드뷔시의 '달빛'을 듣다가, '달빛'의 근원인 베를렌느의 시 '하얀 달'을 필사하며 감흥에 젖었다.

  하얀 달이
  빛나는 숲속에서
  가지마다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흐르는 목소리
  오, 사랑하는 사람아

'음악은 색채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한 드뷔시의 '달빛'은 애잔하고 몽환적이며 꿈꾸는듯 빨려든다.
  그러나 해와 달보다는 비가 잦은 요즘, 아무래도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조인 베를렌느의 대표작 '거리에 비 내리듯'이 적격이지 싶어 방향을 틀었다. 어둡고 슬픈 시대 80년대,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더불어 우리의 정서와 슬픔을 대변해 주었던 시!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적 없다는 우기雨期에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사정없이 적실 것이다. 슬픔 속으로든 희망 속으로든 분명하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나태주 詩 '사는 법')'는 일상을 버리지 못했다.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고, 영화를 보는 여느 예술가들처럼 미친듯이 삶을 살고 미친듯이 삶을 사랑하며 미친듯이 예술에 취한다. 코로나19로, 발목 골절로 집안에 있을 때가 많은 요즘도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 읽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감상하고, 쓰고, 지우고...

  문학에 있어 '비'는 슬픔, 아픔, 절망, 비극 등 불행을 암시하는 매개체다. 거리에 비가 내리면 우리 마음에도 하염없이 눈물 내린다. 잊었던 실패, 굴곡진 시간, 이별, 절망의 시간들이 빗물 따라 되살아나고, 다시 한 번 우리는 더 깊은 슬픔을 껴안는다. 카타르시스를 위한 몸짓이다. 실컷 울고나면 모든 슬픔, 불운, 불행, 비극이 씻겨나가 정화된다.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털레스의 <詩學> 제6장 '비극의 정의'에 나오는 용어인데 '정화작용'을 의미한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보이는 슬픔보다 '까닭모를 슬픔', 정체모를 슬픔의 덩어리가 심중心中에 바위처럼 눌러 앉는다는 것이다. 이 시의 클라이막스 부분이기도 하다.

  진정 까닭모를 슬픔은
  가장 괴로운 고통

  그러나 자세히 보자. 2연에서 시인은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인가'라고 표현했다. 까닭모를 슬픔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삶에 원인 없는 걸과가 어디 있었던가.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詩, 혹은 사랑이나 삶이 삐끄덕거리는 시기는 반드시 있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를 보면 그의 슬픔을 읽을 수 있다. '토탈 이클립스'는 개기월식을 뜻한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을 뜻하는데, 그에게 그토록 하나이고픈 사람이 있었다. 바로 랭보! 21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 역을 맡았는데 환상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20세에 절필 선언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관절염으로 37세에 죽은 랭보와 베를레느와의 멋진 대사들도 잊을 수 없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왜 쓰는지 안다."(랭보)
  "나는 모든 사람이 되기로 했다. 천재가 되고 싶다. 미래의 근원이고 싶다."(랭보)
  "찾았어, 영원을. 그건 태양과 바다가 만 나는 곳이야."(랭보)
  "그가 죽은 후 난 매일밤 그를 보았다. 나의 위대한 찬란한 죄악, 우린 항상 행복했다. 항상.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베를렌느)

  베를렌느가 위대한 시인이라면 랭보는 혁명적인 천재였다. 프랑스를 시의 환상 속으로 몰고간 두 시인. 베를렌느가 떠나려는 랭보에게 총을 쏘아서 손을 다치게 한 일화가 있다. 그 일로 베를렌느는 18개월 감옥에서 지냈고, 그후 시집 <말없는 연가>를 출판했으며 그 속에 '거리에 비 내리듯'이 실려 있다.
  베를렌느는 프랑스 '시인의 왕자'로 발탁되었으며 프랑스 대표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52세에 사망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비보다는 태양을 좋아하는데 나는 유독 비를 좋아한다. 부정적인 의미의 비가 아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의 비를. 비는 모든 것을 씻게 만들어주고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며 시에 대한 영감과 인생에 대한 재해석을 하게 만들어 준다.
  2020년은 코로나와 화재와 홍수와 산사태로 비상이다. 베를렌느와 랭보가 '함께'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우리도 '함께' 극복하면 반드시 밝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꿈꾸어 본다.
  비에 대한 글 중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전혜린의 '목마른 계절'에 인용되어서 알게 된  앙드레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나온 구절이다. '나타나엘이여! 들판으로 나가라, 비를 받아들이자!'

우리도 비를 받아들이자! 태양을 만나기 위한 시련이기에. 빗소리와 함께 드뷔시의 '달빛'이 흐른다.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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