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환자 만들고, 시설이 장애인 만들고, 정신병원이 광인 만들어”
“병원이 환자 만들고, 시설이 장애인 만들고, 정신병원이 광인 만들어”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5.19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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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철학공방 별난’ 신승철 작가-3회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신승철 작가 제공

- 배달시장이 폭발 성장하면서 끝도 없이 일회용품을 쏟아내고 있다.

▲ 플랫폼에서 흥, 재미, 인기, 평판체계 등을 작동시키며 우리의 욕망과 정동을 투여하면 그 이득은 모두 플랫폼이 가져간다. 플랫폼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유통조직이 말단이 배달이다. 배달을 시킬 때 폭염 때나 눈이 올 때 비가 올 때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배달노동자는 그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배달에서 나오는 일회용품은 어마어마하다. 이 모든 것이 지구에 하중을 준다. 플랫폼이 아니라, 공공플랫폼이나 지역플랫폼을 구상해 볼 수 있다. 경기도에서 시작했다고 들었다. 좀 느리게 오더라도 가정주부와 학생들이 걸어서 배달할 수 있는 지역플랫폼 등이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편리를 가장한 소비주의를 넘어서 마을과 지역사회를 풍부하게 만드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 오래전부터 길냥이들을 거둬 키우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사고의 전환으로 거두게 되었는지.

▲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 역할을 몇 년간 했는데, 열악한 환경에 사는 길냥이들이 병에 걸려서 연구실 안으로 들여서 지금은 4마리이다. 그저 귀엽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는 삶, 활발한 삶, 건강한 삶을 살아주는 것으로 고마운 식구들이다. 끝까지 책임과 돌봄을 하는 반려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저부터도 일조하려고 한다. 같이 고양이 네 녀석과 함께 사니 참 좋은 일상들이 펼쳐진다. 이따금 재롱도 떨고 까치와 교신도 하고 클래식음악을 들으러 오는 고양이들이 참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사고전환으로 키운 것이라기보다는 캣맘으로 살을 부대끼고 살다보니 같이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모두 식구들이고, 가족들이어서 하루도 안 보고 살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 인간과 동물과의 상생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멀리까지 갈 필요 없고, 당장 도시에서라도 말이다.

▲ 동물과 더불어 사는 삶은 가까이에 있는 동물들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 문화로부터 시작한다. 당장 육식을 줄이고, 동물들의 처우와 복지에 대해서 신경 쓴다면, 우리는 두 가지 방향에서 활동할 수 있다. 동물복지축산제품을 삼으로써 생명이 생명답게 길러지고 ‘조금씩 가끔 제 값 주고 제대로 알고 먹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채식이다. 예전에는 채식이라고 하면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가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영적으로 이념적으로 무장된 완성형으로서의 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채식인들은 어쩔 수 없이 고기부산물을 먹더라도 채식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완성형이 있을 수 없고 노력형이자 과정형, 진행형 밖에 없는 것이 채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물의 처우와 복지를 위해 먼저 공장식축산업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육류와 고기부산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고기를 덜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디서부터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채식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완전채식인 비건(vegan), 달걀만 먹는 채식 오보(Ovo), 우유만 먹는 채식 락토(Lacto), 우유/달걀 모두 먹는 채식 락토오보(Lacto-Ove), 생선까지 먹는 채식 페스코(Pesco) 등이 그것이다. 저의 채식은 페스코와 덩어리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인 비덩 중간 어딘가이다. 최근에는 플랙시테리안(Flexiterian) 채식이 미국에서 유행이다. 이 플랙시테리안 채식은 사회생활을 위해 사람들과 있을 때는 고기를 먹지만, 자신은 직접 고기를 사먹지 않는 채식이다. 결국 육류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의미로 채식을 봐야 할 것 같다. 육류와 고기반찬이 놓인 밥상은 중앙집중적인 밥상이다. 그러나 수평적이고 평등한 밥상은 소박한 밥상, 공동체밥상, 채식밥상이다. 우리의 채식문화는 오방색으로 표현되는 다채로운 채소가 어우러져 꽃 피웠다. 된장찌개만 먹어도 채식이다. 고등어가 들어간 김치찌개만 먹어도 채식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위클리서울/ 신승철 작가 제공

- 생선도 생명이다. 바다의 생명체는 섭취해도 되고 육지의 그것들은 섭취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나온다.

▲ 생선도 역시 생명이지만, 육지에 사는 생명들이 공장식 축산업의 좁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선점을 찾자는 얘기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명들이 살다보니, 공장식 축산업에서 광우병, 돼지콜레라, 구제역,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 다양한 가축전염병의 온상이 되고 있고, 주기적으로 대규모로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생명의 절규 앞에서는 바다와 육지가 구분되지 않는다. 현재 바다 생명체는 엄청난 싹쓸이 어업에 의해서 어류가 9%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고, 이에 더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된다면 더 이상 음식으로서는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이제 인류는 인류와 농장동물, 반려동물, 실험동물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멸하게 되는 고립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야생동물은 전체 동물의 3%에 불과한 상황이다. 바다 역시도 예외가 아니며 올 것이 오고 있다.

 

- 생명과 환경 문제는 늘 우리 주위에 도사리면서도 등한시 된다.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기후위기는 1.5℃까지 7년 남았다고 평가된다. 왜 1.5℃가 중요하냐하면 그 이후부터는 기후위기가 더 큰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인류의 통제권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1.5℃는 티핑포인트라고 불린다. 비행기는 명백히 떨어지고 있다. 물론 경착륙을 통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종간을 놓지 않고 연착륙을 한다면 모두 살아남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조종수들이다. 살림과 실천에서 떨어지는 비행기 속에서의 심정으로 하나하나 줄이고 아끼고 감축해야 한다. 우리가 남기고 갈 것은 부와 재산이 아니라, 생명과 미래세대에게 남길 사랑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자취를 많이 남기는 삶이 아니라, 자취를 적게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생태학자이기도 한 이반 일리치는 병원의 치료를 살해의 과정이라는 식으로 평하기도 했다. 생명과 죽음을 대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 일리치는 병원이 환자를 만들고, 시설이 장애인을 만들고, 정신병원이 광인을 만든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관리되는 삶에서 주목할 것은 그저 생명만 유지하는 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는 병원에서 자신의 반려인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준 반려견을 생각한다. 아는 지인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으시면서 눈을 감았다. 맹자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생명에 대한 사랑은 죽음을 초월해 영원성의 약속으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 유한한 삶이지만, 생명과의 따뜻하고 애틋한 기억을 남기고 떠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영원성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과 동물 모두의 생명에게 희망이 있다는 점, 그 생각은 변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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